빅 마이크는 2017년에 2주짜리 휴가로 필리핀에 왔다.
그리고 아직 안 떠났다.
마이크는 61세, 이혼 두 번, 클리블랜드 근처 어딘가 출신이었다. NAIA 공항에 내렸을 때 차림은 카고 반바지에 흰 뉴발란스 운동화, 하와이안 셔츠, 그리고 현금 3,800달러가 든 전대였다. 친구 랜디가 “거기 ATM은 절대 믿지 마”라고 했기 때문이다.
72시간 만에 마이크는 네 가지를 해냈다.
중고 도요타 포츄너를 샀다.
약혼을 했다.
사리사리 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자기 여권이 어디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약혼녀 조이는 34세였고, 사진으로 보면 반대 증거가 수두룩한데도 그를 “내 잘생긴 미국인”이라고 불렀다.
마이크는 조이와 함께 그녀의 고향 팜팡가로 이사했고, 곧바로 바랑가이 전체에 “써 마이크”로 알려졌다.
마이크는 이게 너무 좋았다.
오하이오에서는 판사가 두 번째 이혼을 확정한 뒤로 아무도 그를 “써(sir)”라고 불러 준 적이 없었다.
마이크는 매일 아침 농구 반바지만 입고 웃통을 벗은 채 사리사리 가게로 걸어갔다.
“굿모닝, 써 마이크!”
“굿모닝!”
“어디 가요, 써 마이크?”
“가게.”
“밥 먹었어요?”
“응.”
“맴 조이는 어딨어요?”
“안에.”
“미국엔 언제 돌아가요?”
“나 여기 산다니까, 로날도!!”
이 대화는 6년 동안 매일 아침 반복됐다.
마이크는 곧 필리핀에서 은퇴한다는 게 얼떨결에 친척 약 47명이 생긴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엄마.
아빠.
자매 셋.
형제 넷.
사촌 일곱.
삼촌 둘.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모 한 명.
그리고 그를 “엉클 마이크”라고 부르는 아이들 약 열여섯 명.
마이크는 조카 한 명에게 자전거를 사 줬다.
이건 전략적 실수였다.
3주 만에 마이크는 자전거 네 대, 교복 두 벌, 냉장고, 노래방 기계, 그리고 준이라는 남자의 트라이시클 기화기까지 사 줬다. 마이크가 보기에 준은 아무하고도 친척이 아닌 게 거의 확실했다.
그다음은 집이었다.
마이크가 처음 잡은 예산은 250만 페소였다.
최종 비용은 680만 페소였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시공업자조차—설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이크는 자기 집을 사랑했다.
침실 넷, 욕실 셋, 보안 카메라 열일곱 대, 그리고 마이크가 직접 설계한 비싼 실내 주방보다 훨씬 많이 쓰이는 야외 주방이 있었다.
그의 자랑은 거대한 미국식 냉장고였다.
아무도 안 썼다.
가족들은 계속 그 옆의 작은 냉장고에 음식을 넣었다.
“왜 큰 냉장고는 안 써?”
“너무 커요.”
“아니 이미 산 거잖아!!”
“네, 마이크.”
이것이 마이크가 처음 맛본 필리핀식 논리였다.
그다음 그는 노래방을 알게 됐다.
처음에 마이크는 노래방을 싫어했다.
여섯 달 뒤, 매주 금요일 밤 10시 47분쯤이면 반경 2킬로미터 안 주민들은 잔뜩 취한 미국인이 부르는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이크는 오하이오 출신이었다.
그건 상관없었다.
자정이 되면 프랭크 시나트라로 넘어갔다.
새벽 1시엔 에어 서플라이를 불렀다.
새벽 2시, 마이크는 필리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음식 쪽 변화도 그만큼 극적이었다.
처음 왔을 때 마이크는 햄버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먹으려 했다.
그러다 시시그를 알게 됐다.
얼마 안 가 그는 진짜 팜팡가 토박이들한테 제대로 된 시시그는 어디서 먹어야 하는지 강의하고 있었다.
“마요네즈는 안 돼!” 마이크가 선언하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는 특히 레촌에 열을 올렸다.
피에스타 때면 아무 자격도 없으면서 돼지 옆에 서서 묻지도 않은 고기 써는 법을 훈수했다.
그러다 마이크는 레드호스를 알게 됐다.
불행한 일이었다.
첫 만남은 동네 생일잔치였다.
“이거 얼마나 세?”
“세요, 써 마이크.”
“나 40년 동안 버드와이저 마신 사람이야. 괜찮아.”
마이크는 괜찮지 않았다.
밤 11시 30분, 그는 어리둥절한 트라이시클 기사에게 미국 선거 제도를 설명하고 있었다.
자정엔 노래방에 도전했다.
12시 20분엔 해변 리조트를 차리겠다고 발표했다.
아침이 되자 리조트 계획은 조용히 취소됐다.
마이크는 결국 필리핀 전문가가 됐다.
적어도 마이크 본인 말로는.
18개월을 살고 나자 그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설명하는 게 일상이 됐다.
“여기 문제가 뭐냐면,” 마이크가 말을 꺼내면
다들 25분짜리 연설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마이크가 제일 좋아하는 주제는 교통, 전기 요금, 부패, 아무도 깜빡이를 안 켜는 이유, 쇼핑몰마다 커피숍이 열일곱 개씩 있는 이유였다.
그는 필리핀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온 누군가가 필리핀을 비판했다.
마이크는 바로 격분했다.
“당신이 필리핀을 알아?!”
마이크의 변신이 완성됐다.
여섯 달마다 그는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됐어. 나 미국 돌아간다.”
조이는 계속 페이스북을 넘겼다.
“이번엔 진짜야.”
“네, 마이크.”
“플로리다가 더 싸게 살 수 있어.”
“네, 마이크.”
“인터넷도 잘 되고.”
“네, 마이크.”
“사람들이 운전도 할 줄 알고.”
“네, 마이크.”
20분 뒤:
“조이,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삼겹살?”
“그래.”
마이크는 끝내 오하이오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콘도를 샀다.
그다음엔 농지를.
그다음엔 중고차 한 대를 더.
그러고는 어쩌다 조이의 사촌 봉이랑 틸라피아 사업에 엮였다.
마이크는 틸라피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봉은 그보다도 조금 더 몰랐던 것 같다.
사업은 7개월 갔다.
마이크는 24만 페소를 날렸다.
지금까지도 마이크는 그걸 이렇게 말한다.
“뭐, 거의 본전이었지.”
하지만 최고의 장은 마이크의 68번째 생일에 펼쳐졌다.
조이가 몰래 파티를 준비했다.
마이크는 열 명쯤 올 줄 알았다.
112명이 왔다.
마이크가 알아본 사람은 서른 명 정도였다.
통돼지 바비큐 세 마리, 레드호스 여섯 박스, 업소용 노래방 기계, HAPPY 68th BIRTHDAY DADDY MIKE라고 적힌 풍선, 그리고 마이크를 5분 동안 끌어안은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저분 누구야?” 마이크가 속삭였다.
“우리 엄마 사촌.”
“내가 만난 적 있나?”
“아니.”
해 질 무렵, 마이크는 집 밖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법적으로 권할 만한 시간보다 세 시간 일찍 노래방을 시작했다.
그의 개는 플라스틱 테이블 밑에서 자고 있었다.
조이가 산미구엘을 건넸다.
마이크는 주위를 둘러봤다.
9년 전 그는 해변과 싼 맥주, 그리고 클리블랜드를 떠나 2주 쉬는 걸 기대하며 NAIA 공항에 내렸다.
그런데 대신 집 한 채, 아내, 개 한 마리, 수십 명의 친척, 대자녀 셋, 차 두 대, 망한 틸라피아 사업 하나, 정체불명의 금전적 의무 여러 건, 그리고 시시그에 대한 아주 확고한 의견을 얻었다.
마이크는 한 모금 마셨다.
“있잖아,” 그가 말했다. “필리핀은 완전 미친 나라야.”
조이가 웃었다.
“그럼 왜 있어요?”
마이크는 잠시 생각했다.
그때 노래방 기계에서 “Country Road”가 흘러나왔다.
마이크가 일어섰다.
“내 맥주 좀 들고 있어.”
그리고 바랑가이 전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써 마이크가 또 노래를 부르려 하고 있었으니까.
생일 파티 비용을 마이크가 다 냈다는 얘기를 빼먹었네요.
이 글 하나가 이 서브 질문의 99%에 답해 주네요.
나도 크면 마이크처럼 될래.
이거 ChatGPT가 쓴 거예요?
너무 뻔하네요.
마이크는 처음 왔을 때 수영도 못 했는데, 지금은 홍수 전문가가 돼서 물속에서 My Way까지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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