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둘러보기.
필리핀 앙헬레스를 여행하면서 내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의외로 거창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골목 상권이었다.
앙헬레스에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다 보면 큰길 양옆으로 끊임없이 작은 골목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주택가나 동네 골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심코 고개를 돌려 골목 안쪽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보인다. 한두 명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그곳에는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씩 모여 있다. 음식점도 있고, 작은 술집도 있고, 편의점 같은 가게도 있고, 이발소나 세탁소,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어떤 곳은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사람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고, 어떤 곳은 오토바이와 지프니가 드나들면서 나름대로 활기가 넘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과 몇십 미터만 더 가면 훨씬 큰 상권이 있다는 것이다.
굳이 저 골목 안쪽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더 큰 가게도 있고, 더 많은 식당도 있고, 더 넓고 깨끗한 길도 있는데 사람들은 굳이 그 작은 골목에 모여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저기에는 대체 뭐가 있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운전을 해주는 친구에게는 그것마저 신기하게 보이나 보다. 차를 타고 가다가 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골목을 쳐다보면 친구가 웃는다. 아마 속으로는 또 저걸 보고 있네. 나에게 왜 보내고 물어본적도 있다. 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골목이 꽤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을 쉽게 보기 어렵다. 물론 한국에도 골목 상권은 존재하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알려진 상권이거나 특정한 목적을 가진 곳이다. 그런데 앙헬레스에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또 하나의 작은 동네가 나오고, 그 동네 안에는 또 나름의 생활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게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이 사람들은 원래 여기서 사는 걸까?
이 가게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왜 이 골목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을까?
조금만 더 가면 큰 상권이 있는데 굳이 여기 오는 이유가 뭘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별것 아닌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가끔은 그냥 작은 골목이 아니라 생각보다 꽤 그럴듯한 상권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기대감이 생긴다.
어? 여기는 좀 괜찮은데?
그럴 때면 친구에게 잠깐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골목을 천천히 걸어본다.
사실 특별히 살 것이 있어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온 맛집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곳을 걷는 게 즐겁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보고, 어떤 가게가 있는지 보고,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고, 또 다른 길이 나오면 그쪽으로 가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여행객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한가운데를 잠깐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아마 여행의 재미라는 게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이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차를 타고 가다가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골목 하나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가 궁금해져 차에서 내려 직접 걸어보는 것.
앙헬레스의 골목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가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지도 않다. 때로는 좁고 복잡하고,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낡아 보이는 곳도 많다. 그런데 그 안에는 분명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있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큰길에는 도시가 보이고, 골목에는 생활이 보인다.
나는 앙헬레스를 여행하면서 그걸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큰 건물이나 유명한 장소보다 오히려 골목을 보게 된다. 저 골목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사람들은 왜 저곳에 모여 있을까. 혹시 또 내가 몰랐던 작은 상권이 하나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정말 그런 곳을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이라는 게 꼭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길에서 고개를 돌리고,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골목 하나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호기심을 따라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보는 것.
돌이켜보면 내가 앙헬레스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 중 일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골목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