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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사장조카
잡담

필리핀에 가면 이상하게 햄버거 가게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생각하는 햄버거집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가격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볼 필요가 없다. 너무 싸서 처음에는 내가 가격표를 잘못 읽은 건가 싶다. 심지어 1+1이라고 써 붙여 놓은 곳도 많다.

햄버거 두 개를 준다고 한다.

그런데 햄버거를 열어 보면 이유를 알 것 같다.

빵이 있다.

패티가 있다.

소스가 있다.

끝이다.

양상추? 없다.

토마토? 당연 없다.

치즈? 있다고 믿는다는게 가치가.

한국 햄버거가 다양한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식이라면 필리핀의 저가 햄버거는 조금 다르다. 빵과 패티와 소스가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음식에 가깝다.

처음 먹으면 조금 허무하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맛있는 것보다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어? 끝났네?

그런데 가격을 다시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 이 가격이면 인정이지.

필리핀의 저가 햄버거는 음식이라기보다는 경제학 교과서에 가깝다. 최소한의 원재료로 최대한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운다. 복잡한 철학도 없다. 고급 소스도 필요 없고, 패티 두 장도 필요 없다. 빵 사이에 패티 하나 넣고 소스 뿌린 다음 손님에게 건네면 된다.

그리고 1+1까지 붙으면 갑자기 사장님이 자선사업가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사일 것이다. 필리핀은 소득 수준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저렴한 식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수요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런 가게들도 많아진다.

앙헬레스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모습이 상당히 재미있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쇼핑몰과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있는데,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작은 가게에서 햄버거 하나를 아주 저렴하게 판다.

한쪽에서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세트 메뉴를 먹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오토바이 타고 온 사람이 길가에서 1+1 햄버거를 받아 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한 장면 안에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여행객 입장에서는 이런 가게가 재미있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만 여행의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길을 걷다가 발견한 이름도 모르는 햄버거 가게에서 1+1을 주문하고, 종이봉투에 들어 있는 햄버거 두 개를 들고 돌아가는 순간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물론 매일 먹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현지 음식 체험이고, 두 번째는 가성비 식사인데, 세 번째부터는 슬슬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라는 철학적 질문이 시작된다.

그래도 그 햄버거를 보면서 필리핀의 현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싸구려라서 의미 없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돈과 물가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주 현실적인 음식인 것이다.

빵, 패티, 소스.

참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햄버거 하나에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과 물가, 소득 수준, 자영업자의 생존 방식이 묘하게 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1+1이면 일단 기분은 좋다.

맛은 둘째 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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