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해 봤는데, 여기서 평생 산다는 건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어요.
원래 최근 글에 댓글로 달려다가 쓰게 된 건데, 저처럼 느끼는 분들이 또 있는지 묻고 싶네요.
저는 작년 6월에 필리핀 약혼녀와 결혼하고, 여기서 은퇴하고 싶은지 알아볼 만큼 지내 보려고 왔어요. 아내와는 다른 나라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어요. 아내는 2023년에 필리핀으로 돌아갔고 저는 작년에 따라왔죠. 그전에도 몇 번 와 본 적은 있지만, 그 나라에서 계속 일하며 돈을 모으던 중이라 아내를 보러 잠깐씩 들른 게 다였어요.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일이 끝나 버렸어요. 원래는 2~3년 더 있으면서 돈을 더 모을 계획이었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잖아요?
아무튼 저는 은퇴 후 수입이 괜찮은 편이에요. 여기서는 왕 두 명처럼 살 수 있을 정도요. 그런데 나중에 살고 싶은 애리조나에서는 아마 중하층쯤 될 거예요. 거기에 제 땅이 있어서, 가면 조립식 주택을 올릴 생각이에요. 호화로운 생활은 아니겠지만 제 방식대로, 이미 사정을 훤히 아는 곳에서 사는 거죠. 저희는 이제 막 CR-1 비자 절차를 시작했어요. 정말 승인되면 좋겠어요.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건 알고 각오도 했어요. 제가 각오 못 한 건 여기서 평생 사는 거예요. 여기서 은퇴하면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아아, 여기서 영주한다는 건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어요. 무너져 가는 인프라, 제대로 된 음식과 유제품이 없는 것, 그야말로 공포 쇼인 교통, 그리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이 그저 그런 수준에 만족한다는 너무나 뻔한 사실까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요. 며칠 전엔 25달러짜리 커피메이커 하나 사려고 가전제품 매장에서 35분을 보냈어요. 처음엔 가게 주인들이 손님 만족 따위는 신경 안 쓰는 줄 알았어요. 이제 보니 신경 쓸 수도, 안 쓸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도 그보다 더 신경 쓰는 건 직원 도둑질을 막는 거예요. 모든 걸 번거롭게 만드는 게 도둑질을 막는 방법이니, 손님이랑 손님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거죠. 직원들은 손님을 기쁘게 해 줄 동기가 하나도 없으니 결국 고객 서비스라는 게 존재하질 않아요.
그동안은 최대한 바쁘게 지내려고 해요. 시간도 보내고 머리도 쓰려고 아내와 함께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는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래도 결국 저는 이곳을 백미러로 보게 될 날만 기다리며 제자리에서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거죠.
“여기가 싫으면 그냥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게 참 고소하네요. 그 말을 하도 많이 봐서 토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진짜로 최대한 빨리 떠날 계획이거든요. 비자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면 동남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기다릴까 생각 중이에요. 절차가 끝났는데 아내 비자가 거절되면, 그때 가서 받아들이고 정착할 곳을 찾을 거예요. 하지만 필리핀은 아니에요.
저랑 필리핀 아내가 둘 다 살 수 있는 더 나은 나라는 못 찾을 거라고 말하는 분들은 너무 속이 좁아서 토론할 가치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