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계급사이.
올 2월 아바칸강에 주변의 빈민가를 구경하다 눈에 보이는 가난이 너무 그래픽해서 칸디팔라스로 돌아와 에어컨을 풀로 키고 냉장고에서 콜라 한캔을 꺼내 마시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정도면 당장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거 아닌가?
빈민들의 가난이 이렇게 심한 반면에 어떤 상원의원의 와이프 인스타그램은 또 얼마나 화려하며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과시적인가?
사실 혁명의 발발은 독재자의 폭정이나 지배계층의 부패만큼 빵가격에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10년대초에 중동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아랍의봄 혁명역시 그 배경에는 폭등한 빵가격이 있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정치적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내 입에 들어가는 빵 가격이 오를 때 비로소 거리로 뛰쳐나올 확률이 높은것이다. 이념 공정 부패 같은 고상한 개념은 내 배가 부르고 나서야 나올 수 있는 개념인 셈이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 이제 봉건 계급사회로 안착한 것으로 보이는 필리핀에도 물가가 다 폭등하는 요즘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혁명만큼은 막아야할테니 이 빵가격만큼은 잡아야 하고 가만히 살펴보면 가격이 상당히 안정적이다.
친구네 집 근처의 빵집이다. 자나스버거 옆에 있는집이다.
필리핀의 특성상 고굽주거단지를 나오자마자 생기는 서민거주 지역의 빵집은 판데살도 판매한다.
판데살은 소금 빵이라는 뜻의 필리핀 국민빵이다.
필리피노들의 아침은 이 빵 두세개에 커피로 때우는 경우가 보통이라한다. 판데살의 가격이 하나에 3페소. 즉 70원정도이다.
필리피노들의 하루벌이가 500페소 즉 만이천원 만삼천원정도이니까 일만 하고 판데살만 먹는다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서민의 1페소까지도 쪽쪽 빨아먹으면서도 일을 한다면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게 만든 정교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감탄이 나왔다.
물론 밀가루룰 수입할테니 관세를 낮추거나 최악의 경우 정부 비축분을 풀거나 보조금을 주거나 하는 방법으로라도 밀가루 가격만은 안정시킬 것이다.
다음은 쌀. 보통 1킬로에 60페소 천오백정도 한다. 밥을 한다면 5-6인분에 나오는 양이다. 필리핀은 반찬문화가 아니고 밥문화다.
즉 치킨 한조각으로 우리나라 밥 두공기 분량을 먹는 게 서민들의 평균적인 식사다.
쌀값이 폭등했다고 해도 이정도이니 해먹는다는 가정으로 치킨 한조각에 밥 한덩이로 계산을 해보면 역시 한끼에 천원을 넘지 않는다. 최저임금만 받을 수 있다면 역시나 굶어죽지는 않는다.
친구가 자주가는 자나스버거 주변 이발소의 이발비는 2500원(100페소)이다. 하지만 SM몰에 가면 이발비가 300페소(7500원)으로 훌쩍 뛴다. 이렇게 서민들의 생활물가를 알면 팁을 할 때 감각이 생긴다. 그 이발소는 아주 정성들여 깍아준다 맛사지도 해주고.. 동네 미용실에서도 예술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듯 한컷 한컷에 장인 정신을 넣는다.
50페소를 주인에게 팁으로 주면 그 주인은 한 끼 식사를 할수있다.
Tukomi라는 필리핀 채널이 있다. 구독자가 사백만이 넘으니 대형 메이저 채널이다. 그곳의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들 7위안에 무려 세개가 잘나가는 부자가 노숙자인척하고 서민의 반응을 보는 몰카다. 조회수 1위 2위 7위가 그런 영상이다.
Dannalyn이라는 필리핀 채널은 구독자가 무려 천만명을 넘는다. 한국으로 치면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벨이다.
이 채널의 최고 조회수 영상도 자신의 부유한 삶과 빈민가의 거지가족의 삶을 하룻동안 바꿔서 체험해보는 영상이다. 이런 영상을 기획하고 올린 그 저열한 도덕성에 혀를 내둘렀지만 문화차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봤다. 뉴스에도 나온거 같다.
이런것만 봐도 계층 사다리를 뚫고 올라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필리피노라고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부자들의 집, 자동차, 해외여행 영상을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약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갈것이다.
Tukomi의 노숙자와 부자 영상은 바로 그 환상을 자극한다.
더러운 옷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스포츠카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는다. 사람들은 놀라고,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낀다. 평소 무시받던 사람이 사실은 성공한 사람이었다는 반전 때문이다. 이는 영화 신데렐라나 재벌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와 비슷하다. 가난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대리만족이다.
Dannalyn의 부자와 가난한자의 삶을 바꿔서 체험해보기도 그럴것이다.
시청자는 마치 다큐멘터리와 예능을 동시에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은 원래 자신과 다른 계층의 삶을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재벌 이야기, 빈민가 다큐가 항상 인기를 끄는 이유도 같다.
결국 이런 영상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필리핀 사람들이 특별히 속물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계층 이동의 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희망과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살까?라는 호기심이 합쳐진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욕망도 현실로 돌아오면 그저 꿈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고찰을 저 높은 칸디팔라스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콜라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 언밸런스함에 잠시 헛웃음과 죄책감이 밀려온 기억이 있다.


